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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 전주의 이것저것 작은 박물관과 볼거리 2부


 : 전주 한옥마을에는 흔한 관광지처럼 크고 작은 박물관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마 내가 미쳐 챙기지 못한 곳도 있을 거라 본다. 대부분 무료이기 때문에 마음껏 구경하고 보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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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박물관



 

 김치박물관도 무료다. 김치와 관련된 제품도 구입할 수 있고... 한국 전통의 음식은 정말 건강하고도 건강한 음식이 아니었던가... 아쉬운게 뭐라도 하나 사가지고 오는 건데...



위치


 무슨 문화관 이런식의 이름으로 각종 전시관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근처에는 전주 술 전시관도 가까이 있었고...




 김치 만드는 방법과 김치 종류, 그리고 김치와 관련된 상품들. 그리고 김치를 매번 담그는 모양이더라. 여기 김치 정말 맛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김치 중독인지도 모른다. 먹고 또 먹고, 안먹으면 그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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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전통술박물관





: 전주전통술 박물관. 여기에서 시음까지 가능하다. 한4가지인가를 시음할 수 있더라만은... 워낙 많이 나가서인지 술이 거의다 동났더라만은... 좀 마셔봤는데, 소주와는 딴판인 그 품질이 느껴지더라는... 문제는 비싸다는 거지...


 위치







 집집마다 맛이 다를만큼 그 다양했던 수많가지 종류의 술과 막걸리가 일제시대때 그 명맥이 사라졌던 것이다. 지금 이름을 가진 몇몇 술은 그 억압을 이기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남은 것들이다. 만약 한국의 다양한 그 술의 역사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지금 나는 정말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고, 또 한국은 술과 관련해서 세계에서 내놓으라하는 다양한 술의 중심지가 되었겠지.... 




 만약, 그랬다면 세계 다양한 명주처럼 한국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이 있었을텐데.... 


 여기 박물관 작지만 꽤 알차게 준비해 놓았다. 술만드는 과정과 술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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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 전주의 이것저것 작은 박물관과 볼거리 1부


 : 전주 한옥마을에는 흔한 관광지처럼 크고 작은 박물관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마 내가 미쳐 챙기지 못한 곳도 있을 거라 본다. 대부분 무료이기 때문에 마음껏 구경하고 보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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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마을 역사관



 

 무료였던 한옥마을 박물관, 이 한옥마을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부촌에서 몰락과 흥망성쇠의 역사가 담겨있다.



위치

 이곳 마을 자체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와야 한다. 그럼 한눈에 알 수 있다. 왜 지금의 한옥촌이 형성되었는지 그 궁금증이 해결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곳을 차지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생겼다. 전쟁에서 소실되었거나 개발로 다 없애지 않을걸까?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다 가질만하다. 급격한 변화의 역사를 겪은 한국이니...





 안에는 해설사가 설명해주었던 내용이 재현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서 이동했던 모습, 실록 편찬 모습 등. 당당히 한국 역사의 한 장면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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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김치 박물관 등





: 판소리 같은 조선시대 음악 전시관도 있다. 명창을 소개한 곳도 있고... 한국의 전통 음악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전주에 갔다면 여기도 꼭 가보길 권장한다.


 위치








 이처럼 판소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음악과 악기를 듣고 보고 만져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음악의 모든 것을 여기 한옥마을에서도 만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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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 경기전안, 전주 사고와 어진 박물관


 : 다행기게도 무료 해설 프로그램이 있어서... 입장료가 3,000원인데 그정도야... 낸다. 해설사 비용도 안나오겠더라... 거의 공짜라고 본다. 경기전, 태조의 초상화를 포함해서 성리학 위인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 조선왕조실록도 모셔놓았던 곳!!!! 그리고 그걸 지키려했던 선조들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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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전



 

 경기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고 한다.



위치


역사서를 모신 공간인 사고, 그안에는 지금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전시관이 형성되어 있더라... 저 사고안의 실록도 지키기 위해서 선조들이 노력했고 또 유일하게 남은 실록이란다. 만약 이것마저 유실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즐기는 수많은 고전 사극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겠지...





 안에는 해설사가 설명해주었던 내용이 재현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서 이동했던 모습, 실록 편찬 모습 등. 당당히 한국 역사의 한 장면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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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박물관





: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곳이다. 태조 어진부터 시작해서 다른 왕의 어진도 모셔져있는 곳이다. 원본이 있다고 하는데, 전시된 것은 복사본이란다. 완전 사실 그대로 그린 것이기에 실제 임금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음.




 임금 행차 모형도 전시되어 있고, 사람 모형도 전시되어 있음. 이정도로 정확하게 정교하게 오래전 역사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역사에도 기록에 남지 않을 만큼 사라져간 민족이 얼만 많이 있는가? 



 그외 임금이 쓰던 옷 물건, 한지 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짝 감상하도록 하자.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마 임금만 단일로 해서 전시되어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할까? 한국박물관이나 서울박물관에서도 이런 식으로는 보지 못했던 것 같아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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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 경기전, 처음 들어본 경기전에 대한 이야기...


 : 다행기게도 무료 해설 프로그램이 있어서... 입장료가 3,000원인데 그정도야... 낸다. 해설사 비용도 안나오겠더라... 거의 공짜라고 본다. 경기전, 태조의 초상화를 포함해서 성리학 위인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 조선왕조실록도 모셔놓았던 곳!!!! 그리고 그걸 지키려했던 선조들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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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전



 

 경기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고 한다.



위치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한국에선 건물 하나를 지을 때도 그냥 아무렇게나 지은게 아니고 하나하나 모두 그 뜻이 있다고 한다. 저 기둥도 뭔가 뜻이 있다고 하는데... 아, 뭐라고했는지 까묵었다... 






 경기전 이 건물은 다행이게도 불타지 않고 보존되었다고 하더라. 광해군 이후로... 다른 곳은 다 타고 없어져버렸는데....




 전주에는 이렇게 지켜진게 많다. 조선시대야 그 근원이 '농사'였고 평야와 농사의 중심지였던 이곳 '전주'가 자연스럽제 중요한 도시였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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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으로부터, 일제로부터 지켜낸 문화유산....





: 해설사의 얘기를 듣다보면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안생길 수가 없다. 뭔가 만들어 놓으면 어김없이 일본이와서 다 파괴했으니까... 그 와중에 전주의 시민들은 우리 조상들은 그 유산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고....


 아래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다. 초상화는 털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릴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 특징이다.


 경기전 안에 있는 그릇하나 조차 그 의미를 부여해서 놓았던 조상들. 그 형식과 틀을 지키기 위해서 애썼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방향, 문 방향, 건물 모양 그 모든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만들었단다. 




 경기전 안에는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신 곳과, 규장각처럼 조선왕조실록과 서적을 보관하던 곳, 그리고 성리학 성인의 위패를 모신 곳이 있다. 각각 이름이 있지만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한다. 성리학도 결국 중국의 학문에서 온 것이고 언어도 중국의 언어를 기반으로 한 '한자'였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전통 한국은 아니었다라고 해야 할까? 성리학의 명과 암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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