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방지법? 가난방지법부터 먼저 만들어라.

회색칼럼(Gray Column)/모두가 행복한 세상 만들기(For all to be happy) 2018. 2. 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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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메일로 온 한 기사가 나의 눈을 사로 잡았다.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0810000062
 (엄마 병원비 벌러 다시 성매매 뛰어든 그녀, 결국.....)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에 또 눈시울이 붉어 졌다.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 가진 건 몸뚱아리 밖에 없는 그들, 그들에게 사회는 그리고 한국이라는 시스템은 속박과 억압이라는 굴레를 씌워 결국은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성매매 방지법까지 만들어서, 자신의 행복을 팔고, 자신의 웃음을 팔고, 자신이 가진 가치를 팔아 버리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만약, 한국의 복지가, 적어도 의료적인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돈이 없어도 치료를 못받아서 죽는 일이 없는 '선진국'같은 의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과연 그녀가 그런 일을 굳이 해야 했을까? 적어도, 병원비 걱정으로 자신의 소중한 자아감과 성을 굳이 파는 일은 안생길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적어도 아무리 없어도,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아무리 못나도, 굶어 죽지는 않는, 적어도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이리도 많이 나오게 될까? 그렇게 외국까지 나가서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할까?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기득권들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들. 서민들, 없고 굶주린 자들의 일상이 바로 이 기사다. 그리고, 눈물 없는 정권과 권력이 만들어낸 모습 속에서 그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대상은 결국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향한다.

 결국 성매매 방지법은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 법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기득권 여성들의 머리속에서 나온 법이다. 기독교적인 순결주의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고, 남편의 아랫도리를 관리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법이다.

 '성매매' - "일정한 대가를 주고받기로 하고 성행위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사전적인 정의도 완벽하진 않다. 성매매를 제대로 정의하려면, 바로 '성행위'를 제대로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기가 결합되는 것을 성행위의 범주로 볼 것인지, 키스나 혹은 손잡기 그리고 구애 행위도 성행위로 볼 것인지. 이는 문화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서도 틀릴 것이다.

 과연 법이라는 것이 인간의 가치관 혹은 윤리적인 것까지 관여를 해야 하는 것인가? 관습법이란 말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도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법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행위. 난 한국의 성매매 방지법은 결국 특정 집단의 가치관을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고 길어질 논의의 대상이 바로 이런 성매매와 성행위의 정의 문제다. 이것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논의의 과정과 결과는 첨예하게 달라지게 된다. 그것은 같은 단어를 우리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라고 한다. 웃기기 짝이 없는 법이다. 약한 여성에게, 취약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성매매의 울타리에서 여자들을 보호하려면, 그런 법을 만들기 이전에 이들이 성매매를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가난부터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약한 '생쥐' 한마리를 '성매매'라고 하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도록 여기저기 통로를 막어 버리고는 '성매매'라는 통로로 들어가면 댓가를 치르도록 만드는 사회구조를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성매매 방지법에 열을 올리기 전에 한국의 복지 시스템과 자본으로 얼룩져 돈으로 법을 만들고 법망을 피해가는 한국을 바꾸는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우선순위가 잘 못된 것이다.


참고로 아랫글은 내가 이전에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면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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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없다. 이들은 그저 남자와 여자로 나누려고 한다. 그 공격대상을 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여성부와 가족부들은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윤리를 대변하고 있고 가진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기 이 전에 '가난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성매매의 밑바닥에 그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건전하지 않은 성윤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성매매 방지법으로 이 것들이 제대로 설 것으로 생각하는가? 성매매 방지법으로 성 산업의 영역을 국제적으로 키워 버린 우리 '여성부', 참으로 장하다. 성매매 방지법이 진정으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이해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모른다, 가난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런 법이 만들어 진 것이다. 국민들을 가난으로 몰아가고, 빛을 지게 만들어서 여자들은 도저히 자신의 몸을 팔지 않으면 방법이 없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돈을 받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나쁜 것인가부터 논의 해야 될 문제다. 이는 어떤 윤리관을 갖는냐에 따라서 옳고 그름이 너무나도 달라진다. 윤리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이다. 논하지 말자, 머리만 아파지는 것이다.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칼린의 말처럼, 떡치는 건 합법이고, 파는 것도 합법인데, 왜 이 두개를 연결한 것은 불법인가? 결국 합법적인 것을 파는 것인데,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 오르가즘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사고의 다양성과 의견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윤리를 강요하는 것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그 것이 강제성을 띄게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파괴하는 것이다. 성매매에 관해서는 그 당사자에게 맞겨야 하며, 성매매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 법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가난에는 관심이 없는 그들인 것이다. 이 나라의 대부분의 가난한 여성들이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름 뿐인 여성을 위한 정책이다. 있는 자들의 뇌에서 나오는 정책들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남자/여자로 편가르기를 하는 이들에게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가르는 척하면서 실제는 있는 여자/없는 여자로 가르는 것임을 알아 채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전 세계 속에서 절대적으로 남자 여자의 차별의 시대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임을 알아 채어야 한다. 남/녀의 차별 보다 심한 것은 바로 인권의 억압이요. 권력의 차이와 경제력의 차이에서 오는 그 차별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 채었으면 한다. 즉, 이런 차별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고자 권력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증오' '미움'이다. 그리고, 이분법적 구분.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미움을 이용하면 대중들은 아주 잘 움직인다.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그리고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런 구도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자들 그리고 세계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정말 원하기만하면 그 결계에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계를 깬다는 것은 결계 속에 있을 때 보호 받던 것 까지 깨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여자들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계 속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은 말하지 않고 권리만을 말하는 이상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그들은 페미니스트란 이름을 들을 자격도 없다. 국방의 의무를 임신과 비교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진 그들이다. 임신이 헌법에 명시된 의무란 말인가? 선택이 가능한 것과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것과는 비교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기 싫으면 그만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이여 이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의 반은 여자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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