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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아프다.

 1998년, 난 사랑이라는 걸 시작했다. 조그마한 일이 계기가 되어 누군가를 사랑해 버렸다.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 그 전까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했지만, 언제나 '자존심'이 사랑 앞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의 자존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자존심에 상처는 절대로 나지 않았다. 다만,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을 동시 다발로 여러번 느꼈다. 그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 혼자만 좋아했던 그녀는 역시나 나는 그저 주위 남자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은 소용없었다. 그저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아픔을 겪은 나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것이 내 맘대로 되는 문제였던가? 그렇게 잘 견뎌 왔던 나, 결국은 누군가를 또 좋아하게 됐고, 지금 나 또 다시 가슴을 움켜 잡고 제발 아프지만 말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 너무나 아프다. 너무나. 그녀는 떠나 버렸다. 너무나 아파서 내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 이런 사랑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는.........




 여자라는 동물을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 이제는 믿지 않으리라. 내 평생 혼자 외롭게 사는 한이 있어도, 차라리 외로운 것은 견딜만하다. 하지만 사랑의 실패는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가 힘들다. 사랑의 실패, 맛 본자 만이 그 아픔을 이해할 것이다. 그 무엇도 소용없게 되는 상태. 사랑은 그 기쁨만큼이나 슬픔이 있음을 모르고 시작하는 아름답고도 참혹한 선택이다. 그 누가 실패를 향해서 나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사랑을 못하는 것이다. 상품처럼 '3년' 보증 같은 보증이 된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 온 마음을 헤집는 일을 하는데 그 정도의 보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자들은 그 만큼 쉽게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아, 사랑에도 보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에도 보험이라는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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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대가 말했던 이웃 사랑에 대한 사랑이 사실이라면 그대를 믿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고 해도 그대를 믿겠소. 그러나 그대를 믿지 않았다 해서 내가 지옥에 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았지만 단지 믿지 않았다는 것으로 지옥에 가는 것이라면 난 그대가 존재한다고 해도 믿지 않겠소.

 내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대부분의 종교가 그러했듯이 기독교란 종교 자체도 지독히 이기적인 종교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면 우리는 지옥에 갈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천당이라는 곳에 가고 싶다면, 그리고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기독교를 믿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만약 자네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따른다면 당신의 이웃이 천당에 갈 것이라고 설교한다면 누가 믿을까? 과연 남을 위한 종교란 있을 수 있을까라고 되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기독교에서 싫어 하는 한가지가 이런 이유로 기독교를 믿으면서 자신은 무슨 구원받은 양, 자신의 예수님의 사도인 양, 자신이 뭔가 특별한 양,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서 생활 하는 모습이 나를 상당히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만 왜 내 삶에 끼어들어서 이리 저리 방해를 놓는단 말인가? 게다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이었는데 어찌 그대는 네 이웃을 미워하는가? 어찌 그대는 네 이웃을 협오 하는가?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많은 모순점이 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사탄의 존재도 그렇다. 사탄이란 존재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 만약 이 둘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사탄이란 존재가 없으면 하나님이란 존재의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가? 그 지고하고 위대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래서 사탄의 존재를 묵인하는 것인가? 그럼 그 것을 묵인하는 하나님의 존재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을 파탄에 빠뜨리는 사탄이란 존재가 없으면 누가 하느님을 찾을 것인가? 사탄이 없는 하느님은? 앙꼬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 참으로 모순이로다.

 세상의 행복이란 그 행복이면에 있는 불행 때문에 그 행복이 존재한다. 그 이전 선조들이 깨닳았던 음양의 조화이다. 그리고 영원의 삶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여 인생이 유한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그 반대로 불행이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했고 그 분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면, 난 그 분을 증오하고도 증오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배를 굶주리며 하루하루를 힘들 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해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만들었으면 책임 져야 하는 법,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 치는 것인가? 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너무도 괴로웠고 힘들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세상을 만들었다면 그 분을 증오한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만약 존재한다면 상당히 잔인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영혼들이여.... 참으로 침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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