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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업주의. 그 상업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분당' '수지' '죽전'이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공동의 공동을 위한 이란 가치가 사라진 못습을 곳곳에서 보고 있는 나는... 장재인의 탈락은, '기존 아이돌 구조를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세력들이 의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

 한국에서, 아니 세계 시장에서 작가주의 가수의 부활은, 결국 자기 입맞대로 통제하기 힘든 시장 창출을 의미하고, 시장에 작가의 입김이 세어짐으로 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작아 질 것 같아서 생긴, 일종의 싹수 잘라내기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한다.
 
 실력으로만 뽑는 슈퍼스타 K 국민의 판단으로 한다지만 주최측의 협의에 의해서, 아니 자본의 힘에 의해서 사전조작이 되는 것은 문제도 아닐터이다. 




 
 장재인의 팬으로서 안타깝다는 표현 보다는, 그런 작가 가수들의 부활을 보기 싫어하는 기획사와 음반산업 관계자들의 만행, 그리고 양질의 다양한 음악을 즐길 통로를 차단당하는 나 같은 문화 소비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의 깊이를 자극하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말초를 자극하는 노래와 화려한 겉모습을 치장한 가수를 내세워, 마치 그 것이 정말 모든 것인양 짜고 치는 고스톱을 일삼는 지금의 음반시장, 그 시장이 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그저 이번 기회에, 다시 작가주의 음악이 판을 치는 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본이 아니라, 가슴과 작가주의가 자본을 움직이고 호령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인 것이다.

 이상이 아니라, 단지 돈이라는 목적하에 지혜가 모여서 그리고 두뇌가 모여서 만들어진 현재의 아이돌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돌의 자리가 흔들릴까 두려워 하는 모습이, 바로 슈퍼스타 K의 주최자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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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메일로 온 한 기사가 나의 눈을 사로 잡았다.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0810000062
 (엄마 병원비 벌러 다시 성매매 뛰어든 그녀, 결국.....)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에 또 눈시울이 붉어 졌다.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 가진 건 몸뚱아리 밖에 없는 그들, 그들에게 사회는 그리고 한국이라는 시스템은 속박과 억압이라는 굴레를 씌워 결국은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성매매 방지법까지 만들어서, 자신의 행복을 팔고, 자신의 웃음을 팔고, 자신이 가진 가치를 팔아 버리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만약, 한국의 복지가, 적어도 의료적인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돈이 없어도 치료를 못받아서 죽는 일이 없는 '선진국'같은 의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과연 그녀가 그런 일을 굳이 해야 했을까? 적어도, 병원비 걱정으로 자신의 소중한 자아감과 성을 굳이 파는 일은 안생길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적어도 아무리 없어도,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아무리 못나도, 굶어 죽지는 않는, 적어도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이리도 많이 나오게 될까? 그렇게 외국까지 나가서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할까?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기득권들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들. 서민들, 없고 굶주린 자들의 일상이 바로 이 기사다. 그리고, 눈물 없는 정권과 권력이 만들어낸 모습 속에서 그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대상은 결국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향한다.

 결국 성매매 방지법은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 법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기득권 여성들의 머리속에서 나온 법이다. 기독교적인 순결주의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고, 남편의 아랫도리를 관리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법이다.

 '성매매' - "일정한 대가를 주고받기로 하고 성행위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사전적인 정의도 완벽하진 않다. 성매매를 제대로 정의하려면, 바로 '성행위'를 제대로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기가 결합되는 것을 성행위의 범주로 볼 것인지, 키스나 혹은 손잡기 그리고 구애 행위도 성행위로 볼 것인지. 이는 문화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서도 틀릴 것이다.

 과연 법이라는 것이 인간의 가치관 혹은 윤리적인 것까지 관여를 해야 하는 것인가? 관습법이란 말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도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법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행위. 난 한국의 성매매 방지법은 결국 특정 집단의 가치관을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고 길어질 논의의 대상이 바로 이런 성매매와 성행위의 정의 문제다. 이것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논의의 과정과 결과는 첨예하게 달라지게 된다. 그것은 같은 단어를 우리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라고 한다. 웃기기 짝이 없는 법이다. 약한 여성에게, 취약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성매매의 울타리에서 여자들을 보호하려면, 그런 법을 만들기 이전에 이들이 성매매를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가난부터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약한 '생쥐' 한마리를 '성매매'라고 하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도록 여기저기 통로를 막어 버리고는 '성매매'라는 통로로 들어가면 댓가를 치르도록 만드는 사회구조를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성매매 방지법에 열을 올리기 전에 한국의 복지 시스템과 자본으로 얼룩져 돈으로 법을 만들고 법망을 피해가는 한국을 바꾸는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우선순위가 잘 못된 것이다.


참고로 아랫글은 내가 이전에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면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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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없다. 이들은 그저 남자와 여자로 나누려고 한다. 그 공격대상을 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여성부와 가족부들은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윤리를 대변하고 있고 가진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기 이 전에 '가난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성매매의 밑바닥에 그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건전하지 않은 성윤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성매매 방지법으로 이 것들이 제대로 설 것으로 생각하는가? 성매매 방지법으로 성 산업의 영역을 국제적으로 키워 버린 우리 '여성부', 참으로 장하다. 성매매 방지법이 진정으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이해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모른다, 가난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런 법이 만들어 진 것이다. 국민들을 가난으로 몰아가고, 빛을 지게 만들어서 여자들은 도저히 자신의 몸을 팔지 않으면 방법이 없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돈을 받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나쁜 것인가부터 논의 해야 될 문제다. 이는 어떤 윤리관을 갖는냐에 따라서 옳고 그름이 너무나도 달라진다. 윤리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이다. 논하지 말자, 머리만 아파지는 것이다.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칼린의 말처럼, 떡치는 건 합법이고, 파는 것도 합법인데, 왜 이 두개를 연결한 것은 불법인가? 결국 합법적인 것을 파는 것인데,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 오르가즘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사고의 다양성과 의견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윤리를 강요하는 것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그 것이 강제성을 띄게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파괴하는 것이다. 성매매에 관해서는 그 당사자에게 맞겨야 하며, 성매매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 법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가난에는 관심이 없는 그들인 것이다. 이 나라의 대부분의 가난한 여성들이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름 뿐인 여성을 위한 정책이다. 있는 자들의 뇌에서 나오는 정책들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남자/여자로 편가르기를 하는 이들에게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가르는 척하면서 실제는 있는 여자/없는 여자로 가르는 것임을 알아 채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전 세계 속에서 절대적으로 남자 여자의 차별의 시대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임을 알아 채어야 한다. 남/녀의 차별 보다 심한 것은 바로 인권의 억압이요. 권력의 차이와 경제력의 차이에서 오는 그 차별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 채었으면 한다. 즉, 이런 차별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고자 권력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증오' '미움'이다. 그리고, 이분법적 구분.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미움을 이용하면 대중들은 아주 잘 움직인다.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그리고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런 구도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자들 그리고 세계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정말 원하기만하면 그 결계에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계를 깬다는 것은 결계 속에 있을 때 보호 받던 것 까지 깨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여자들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계 속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은 말하지 않고 권리만을 말하는 이상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그들은 페미니스트란 이름을 들을 자격도 없다. 국방의 의무를 임신과 비교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진 그들이다. 임신이 헌법에 명시된 의무란 말인가? 선택이 가능한 것과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것과는 비교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기 싫으면 그만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이여 이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의 반은 여자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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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외모로 힘들어 하는 누군가에게 답글로 쓴글입니다.

사회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정말 쓰잘데기 없는 망상들, 착각들입니다. 외모.. 그거 참 웃기거든요? 미라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겁니다. 외국에 가 보세요. 그걸 알 수 있어요. 맨날 쌍꺼풀에 동그란 눈만 보다 보면 작은 동양인 눈이 예쁘게 보입니다. 미국드라마 보세요. 정말 한국적 기준으로 안되는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외모, 행복의 이유가 되진 못해도 불행의 이유가 되어선 안됩니다. 힘내세요. 외모의 50%는 자신감이 먹고 들어갑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런 한국적인 억업에 정말 신물이 나는 사람입니다. 외모라는 것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고 싫어하게만듭니다. 한국에서 유독 성형수술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아닐까요? 그래서, 드라마가 재미 없어지고 있는 거죠. 외모로 사람을 뽑으니, 연기력 떨어지고, 그런 외모에 의존하다 보니 드라마 내용은 재미 없어지고. 짜증 만땅입니다. 미국드라마, Closer를 한 번 보세요. 그리고 Grey Anatomay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외모로 그런 주연급의 연기를 하며, 그 주인공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여자의 매력에 빠지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의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잘생긴 외모에게 좋은 역할을 맡기다 보니 생긴 환상입니다. 쓰레기 같은 현실이죠.


 그 벽을 깨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제발. 세상에,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증거는 쌔고 쌨습니다. 외모로 출세했다면, 명박이는 바로 내려와야 하고, 부시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겠죠?


 예 쁘다는 나경원이는 그렇게 밉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볼 때마다 넘어오죠. 말하는 거 하며, 생각하는 거하며. 한국 변해야 합니다. 그건 나 자신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네, '미모가 행복의 이유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외모가 불행의 이유가 되어선 안되겠습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그건 우리의 몫입니다.


 남이 만든 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출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살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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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윌 헌팅


 : 천재적 지능과 전재적 능력을 지닌, 특히 수학에 탁원한 능력을 지닌, 어릴 때 불우한 아동 시절을 보냈던 한 아이가 있다. 대학의 문턱도 가보지 못한 이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자신의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으면서, 가난하기에 일일 노동자로 일하면서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었다. 한 바에서 아는체 거들먹거리는 한 대학생에게 한 여자를 두고 보기 좋게 지적인 얘기로 한방 먹인다.
 
 그렇게 만난 여대생, 정말 맘에 들었고, 좋아 했지만.......... 자신의 감정도 잘 모르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는 아이......

 이런 아이는 대학교에서 청소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대학교 칠판에 한 교수가 공개 수학문제를 낸 것을 보고 그냥 풀어 버린다. 그리고, 그 푼 답을 교수가 확인을 하고는 놀라게 된다. 이렇게 한 수학교수의 눈에 그 아이드 눈에 들었다. 그리고 또 사고를 치고 감옥에 들어가려는데, 재능이 아까웠던 수학교수는 이 아이를 구제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심리학 교수(그 수학교수의 친구이자 인생관이 다른)의 소개를 받고 운명의 그와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한 아이의 인생을 두고, 업적, 수학적인 업적, 그 아이의 소위 스펙을 인생의 가치로 생각하는 '수학 교수'와 인생의 행복, 정서적인 안정, 감수성이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심리학교수'의 인생관의 대립을 보여주는 정말 보아야할 영화 중에 하나다.

 지금 삼성 VS 애플의 대결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마치 영화속의 수학교사가 삼성을 대변하는 같고 심리학 교수가 애플을 대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확대를 하면, 한국의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이 수학과 교수에 반영되어 있고, 심리학 교수는 미국이 아닌 애플의 경영철학, 그리고 미국의 실리콘 벨리로 대변되는 그 열정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핵심이자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아이를 두고 벌이는 심리학교수와 수학교수의 논쟁이 있다. 수학자는 그 아이의 수학적인 재능, 그 아이와 두고 벌이는 수학적인 얘기로 인생의 행복을 느끼고,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경력 혹은 스펙으로 대변되는 일과 관련된 것으로 인생의 가치를 가진다고 얘기하고 있고, 반면에 그 심리학 교수는 인생은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게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 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수학적인 업적, 돈, 직업, 명예가 아니라, 정서적 안정, 이해, 그리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는 그것이라고 한다.

 심리학과 교수는 이 아이의 보호감찰 조건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기에 그리고 이아이의 삐뚤어진 감수성을 발견하고 이 아이를 상담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끈질긴 심리학 교수의 노력 덕분에 이 아이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이 교수와 깊은 마음의 대화를 하고, 자신의 어릴적 학대를 이 교수에게 털어 놓으면서 심리적인 정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발견한 이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앞날이 창창한 미래'를 버리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즉, 그는 심리학교수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명작이다. 이 영화의 심리학교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그래, 그렇게 외적인 모습이 중요하냐? 어떤 이가 폭탄을 설치해서 여러사람도 죽이고 자신도 죽인 사례를 모르느냐? 어떤 이는 천재이긴 하지만 여러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악마로 변한걸 모르느냐? 대강 이런 종류의 이야기이다.

 이 얘기는 현재 대학생들이 자신의 정서적인 성찰은 하지 않은 체, 출세를 위해서 오로지 스펙만 쌓으면서 영혼이 없는 성능좋은 기계가 되려는 모습을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삼성이라는 존재가 그런것이다. 분명, 기계성능을 뛰어나지만, 거기에는 인간적인 모습이 없는 것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인문학'의 향기가 없는 것이다. 성능만 좋은 기계 덩어리(스펙만 좋은 인재)는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단지 삼성 VS 애플의 모습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물론 이 것은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애플의 주둔지인 미국이라는 나라도, 영혼없는 인재들이 많고, 그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리라. 그렇지만, 한국의 현재 모습은 삼성이라는 것을 넘어서 사회전반에 걸쳐서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삼성 아니 한국은 절대로 애플을 따라갈 수 없다. 이미 영혼이 없는 인재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혼을 사로 잡는 건 '인문학'이다. 내가 인문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인문학도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나는 자연학도, 공학도에 가까운 사람이다. 수학이 좋고 물리학을 좋아하는, 과학을 좋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이렇게 이익이라는 것을 위해서 사람의 영혼을 기꺼이 파는 회사다.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서 결국은 그런 제품만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도전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지 못하는 그런 기계만을 만들어 내는 기업.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서 시험을 잘치기 위해서 달달 외운 인재들만 넘치는 나라. 따뜻한 감수성이 대우 받지 못하는 나라.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나라. 따뜻한 감수성이 바보로 간주되는 사회적 분위기. 그래서 그런 감정없는 인간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런 나라. 그들이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어서 만든 나라.. 지금 그 대한민국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한국은 이제 변해야 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한국의 인문학을 위해서도, 그리고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이공계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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