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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그냥 우울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심지어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시던 어머니, 아마 속으로 마음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집지 못하시고, 내가 싫어하는 과자를 사 놓으셨다.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문을 두들기면서 토마토의 껍질을 벗겨서 나에게 주신다. 껍질까지 통체로 먹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지저분해진 내방을 청소한다고, 이것 저것 다 건드려 놓으셨다. 내가 찾는 물건 찾기 쉽게 놔둔 곳들이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위 일상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선물이다. 난 이 자그마한 선물들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겐 더 소중한 것들이다. 나의 마음을 오해하는 이것들이 나에겐 더 이상 아름다울 순 없는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것을 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그런 불효를 할 수 없다.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 주시는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존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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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잊어 버린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각인한 체, 힘들 때 마다 불쑥 찾아와서는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떠난다. 그 때 이후부터 생긴 혹은 심해진 증상. 무력감, 대인공포, 광장 공포. 그 사건은 이렇게 나에게 얕지 않은 상처를 남겼음이 틀림 없다.

 이젠 오래전의 기억이 왜 다시 꿈으로 나타나는가?

 나에겐 일이 하나의 큰 버팀목이다. 잊어 버리고 몰두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뻐근한 어깨, 개운하지 않은 하루들. 관련된 어휘들이 나타날 때 마다 잠시 멍해지는 일상들. 이것들은 누가 책임을 지나? 





 타임머신이라도 있었으면.... 그저 약한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들.......

 끝나기를, 이제 끝나기를 바래본다.

 코이카, KOICA, 단원, 우즈벡 이제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 단어들이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도 생겼다.

 이제, 이 악몽이 사라지길 기다려 본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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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세상의 절반은 여자다. 고로, 이 세상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책임의 반은 여자에게 있다'

홍대녀의 루저 발언과 현 20대 여성들의 사고 방식 표출과 과감한 발언들은 현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기 보다는 지배적인 여성들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현 20대의 여성들은 미디어와 그 외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상당히 삐뚤어진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 원인을 논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 보다는 현재 한국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것이다. 그녀들의 키 선호는 한국의 지배적인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극히 사회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키큰 남자는 곧, 명품에 해당된다. 보이기 위해서 그것을 데리고 다닌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즉, 드러난 것으로 주위에 보이려는 지극히 현상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대학생이기에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 키란 조건은 사라지고 없는 또 다른 기준이 나타난다. 노골적인.

 난, 다는 아니겠지만, 일부 여성들에게 특히,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성매매업'을 하는 여성과 이런 물질적인 가치를 바라보고 '결혼'을 하거나, 성관계 혹은 그 외에 자신의 매력을 팔아서 일을 하는 여자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화보, 곧 이들은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상품화 한 것이 아닌가? 대인업무를 하는 여성들의 기준에 미모가 들어가고, 그 미모대로 사람을 뽑는 것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것도 결국은 여성들의 남성들에 대한 성적인 매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럼, 성적인 것의 기준과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요즘 벗고 또 벗는 남성 아이돌 가수들은 또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성에 대한 끌림, 혹은 매력을 느끼는 것, 이것도 또한 어느정도 성과 관련된 행위가 아닌가? 조리퐁을 보고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니 어쩌니 하는 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들의 기준 혹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왜 하필 성매매만 금지 시켰는가? 여기엔 그저 지배 이데올로기만 보일 뿐이다. 지금까지 법이란 존재가 있는자들에게 얼마나 솜방망이 같은 존재였는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난, 기본적으로 같다고 본다. 자신이 화장을 한 것은 결국 그 남자를 위해서 돈을 투자한 것이고,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내는게 당연하다고 보는 것,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집을 당연히 사야 되는 것, 남자는 당연히 차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차를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들이 모이는 이 현상. 그리고 돈이 많으면 여자들이 더 많은 이 현상. 같이 한 번 자주고, 그 자준 댓가로 기본적으로 뭔가를 바라는 여자들, 도대체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과 성매매 여성은 얼마나 차이난단 말인가? 결국은 남성에 대한 자신의 매력을 판 댓가가 아닌가? 노골적인 가요 가사와 성적인 모션이 물씬 풍기는 그런 춤 동작은 도대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팔고 있는 것인가? 소위 '성의 상품화'는 결국 '성매매'다. 법의 형평성, 정말 개 같다.

 사회 생활을 해본 여성들, 이들은 다 준비한다 결혼을 왜? 사회생활 해보니깐 알겠으니.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으니,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이런 지긋한 사회생활을 그만 두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자들이 남녀 평등을 주장한다. ㅡ.ㅡ; 여기서 지독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남자들의 경제력을 탐하고 결혼한 여자들이여, 그냥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 출발부터 다른 남녀 불평등에 왜 평등을 주장하는 가? 자신의 미모만 믿고, 남자들의 경제적을 보고 결혼했으면, 그 경제력에 붙어서 잘 살고 있으면, 남자들의 말을 따를 지어다. 젊었을 때, 누릴건 다 누리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미모 바꿔서 조건 좋은 남자랑 순진한척 결혼한 그대여.....남녀 평들이란 말은 하지 말지어다. 의무와 책임은 조선시대, 권리는 21세기인 모습이 현재 한국의 여성들이다.




  한국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없다. 이들은 그저 남자와 여자로 나누려고 한다. 그 공격대상을 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여성부와 가족부들은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윤리를 대변하고 있고 가진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기 이 전에 '가난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성매매의 밑바닥에 그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건전하지 않은 성윤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성매매 방지법으로 이 것들이 제대로 설 것으로 생각하는가? 성매매 방지법으로 성 산업의 영역을 국제적으로 키워 버린 우리 '여성부', 참으로 장하다. 성매매 방지법이 진정으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이해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모른다, 가난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런 법이 만들어 진 것이다. 국민들을 가난으로 몰아가고, 빛을 지게 만들어서 여자들은 도저히 자신의 몸을 팔지 않으면 방법이 없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돈을 받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나쁜 것인가부터 논의 해야 될 문제다. 이는 어떤 윤리관을 갖느냐에 따라서 옳고 그름이 너무나도 달라진다. 윤리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이다. 논하지 말자, 머리만 아파지는 것이다.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칼린의 말처럼, 떡치는 건 합법이고, 파는 것도 합법인데, 왜 이 두개를 연결한 것은 불법인가? 결국 합법적인 것을 파는 것인데,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 오르가즘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사고의 다양성과 의견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윤리를 강요하는 것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그 것이 강제성을 띄게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파괴하는 것이다. 성매매에 관해서는 그 당사자에게 맡겨야 하며, 성매매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 법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가난에는 관심이 없는 그들인 것이다. 이 나라의 대부분의 가난한 여성들이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름 뿐인 여성을 위한 정책이다. 있는 자들의 뇌에서 나오는 정책들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남자/여자로 편가르기를 하는 이들에게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가르는 척하면서 실제는 있는 여자/없는 여자로 가르는 것임을 알아 채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전 세계 속에서 절대적으로 남자 여자의 차별의 시대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임을 알아 채어야 한다. 남/녀의 차별 보다 심한 것은 바로 인권의 억압이요. 권력의 차이와 경제력의 차이에서 오는 그 차별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 채었으면 한다. 즉, 이런 차별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고자 권력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증오' '미움'이다. 그리고, 이분법적 구분.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미움을 이용하면 대중들은 아주 잘 움직인다.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그리고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런 구도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자들 그리고 세계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정말 원하기만하면 그 결계에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계를 깬다는 것은 결계 속에 있을 때 보호 받던 것 까지 깨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여자들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계 속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은 말하지 않고 권리만을 말하는 이상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그들은 페미니스트란 이름을 들을 자격도 없다. 국방의 의무를 임신과 비교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진 그들이다. 임신이 헌법에 명시된 의무란 말인가? 선택이 가능한 것과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것과는 비교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기 싫으면 그만 아닌가?

 한국의, 그리고 세상의 문제가 남/여의 차별 문제였던 적은 그리 많이 없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빈부의 차별 문제와 인종 차별 문제가 더 컷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이여 이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의 반은 여자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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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ording to the article of Chosunilbo issued on 16th of November, 2006, In 2005, it was estimated that 15 billion won was spent on English Education but Korea took the 12th rank among 15 Asian Nations in the English Proficiency. This is amazing. Isn't it? What's happenning now?  And what's wrong with English Education in Korea. Comparing with Japan that spent about 5 billion won, we spent about 2.6 times more money on that.

 What's going on?

 

 I think the main problem is the attitude to Language. Language is not knowledge but just language. Language is about feeling, experience, and tools.

 

 The ideal Approach is to give the direct experience to the learner.

 

 Problems with Current Korean Education System. Test-centered, English is treated as a knowledge not language in most classrooms in Korea. The results from the public educations' failure to meet needs of the korean learners.




 

My high School Experience

 Before we go back to my high school life, I want you to understand that this is only from my experience.

 In my high school, I learned English in the wrong way. I've just studied English Grammar and memorized word by word using Korean to understand that word. I studied English really hard but the result from my high school education was the good score on the test and abundant knowledge about English without speaking English fluently enough considering my efforts. I've tried to master English for a long time but still I am on the road to my goal.

 

 Now, what is considered as best way to master English is putting someone in English Spoken Environment such as going abroad, living with a native speaker at home and so on. So we spend a lot of money for going abroad to English Spoken Countries. And even several english towns were built, where only english must be spoken of course using lot of money. These are only for providing real environment where only English is forced to be spoken to give them real experiences. But all are not cost-effective. Parents have to pay lots of money for it. Children from middle class family would have difficulties in budget.

 

 Let's suppose that technology can solve this problem. OK, if the technology can provide good environment for learning English like in the movie "Matrix" cost effectively. I mean a technology can give student as real environment as it can be with cheap price. We can take the share of the market.

 

 What is best for Korean English Education Market?

 

Korean Market Information From British Counsil

 

 Koreans have traditionally placed great importance on education. Over 85 per cent choose to pursue for a higher education in Korea. Admission to a prestigious university is considered a pathway to success. There are high levels of private funding throughout the system. Pre-schools and all schools beyond middle school level, as well as colleges and universities, charge tuition fees. In addition, widespread use of private teaching complements formal school education. It is estimated that Korean parents spend up to 34 per cent of their income in educating their children. The emphasis on educational success has created a thriving private tutoring sector and is driving a growing market for overseas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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