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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경에 작성된 글 

여성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세상의 절반은 여자다. 고로, 이 세상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책임의 반은 여자에게 있다'

 

 한국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없다. 이들은 그저 남자와 여자로 나누려고 한다. 그 공격대상을 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여성부와 가족부들은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윤리를 대변하고 있고 가진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기 이 전에 '가난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성매매의 밑바닥에 그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건전하지 않은 성윤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성매매 방지법으로 이것들이 제대로 설 것으로 생각하는가? 성매매 방지법으로 성 산업의 영역을 국제적으로 키워 버린 우리 '여성부', 참으로 장하다. 성매매 방지법이 진정으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모른다, 가난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런 법이 만들어 진 것이다. 국민들을 가난으로 몰아가고, 빛을 지게 만들어서 여자들은 도저히 자신의 몸을 팔지 않으면 방법이 없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돈을 받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나쁜 것인가부터 논의 해야 될 문제다. 이는 어떤 윤리관을 갖는냐에 따라서 옳고 그름이 너무나도 달라진다. 윤리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이다. 논하지 말자, 머리만 아파지는 것이다.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칼린의 말처럼, 떡치는 건 합법이고, 파는 것도 합법인데, 왜 이 두개를 연결한 것은 불법인가? 결국 합법적인 것을 파는 것인데,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 오르가즘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다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사고의 다양성과 의견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윤리를 강요하는 것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그 것이 강제성을 띄게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파괴하는 것이다. 성매매에 관해서는 그 당사자에게 맞겨야 하며, 성매매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 법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가난에는 관심이 없는 그들인 것이다. 이 나라의 대부분의 가난한 여성들이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름 뿐인 여성을 위한 정책이다. 있는 자들의 뇌에서 나오는 정책들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남자/여자로 편가르기를 하는 이들에게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가르는 척하면서 실제는 있는 여자/없는 여자로 가르는 것임을 알아 채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전 세계 속에서 절대적으로 남자 여자의 차별의 시대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임을 알아 채어야 한다. 남/녀의 차별 보다 심한 것은 바로 인권의 억압이요. 권력의 차이와 경제력의 차이에서 오는 그 차별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 채었으면 한다. 즉, 이런 차별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고자 권력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증오' '미움'이다. 그리고, 이분법적 구분.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미움을 이용하면 대중들은 아주 잘 움직인다.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그리고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런 구도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자들 그리고 세계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정말 원하기만하면 그 결계에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계를 깬다는 것은 결계 속에 있을 때 보호 받던 것 까지 깨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여자들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계 속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은 말하지 않고 권리만을 말하는 이상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그들은 페미니스트란 이름을 들을 자격도 없다. 국방의 의무를 임신과 비교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진 그들이다. 임신이 헌법에 명시된 의무란 말인가? 선택이 가능한 것과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것과는 비교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기 싫으면 그만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이여 이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의 반은 여자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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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2010년도 경에 작성된 글


 역사가 증명하듯이, 하루하루 살기 바쁜 서민들은 '그저 나아지겠지'하는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 희망이 무서운 것이다. 그 희망 때문에 오늘을 참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리고 싶은 것이다. 여러분들이 현재 어려움을 참지말고 직접 손을 걷어 같이 노력과 투쟁하지 않는 이상은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딱 그런 모습니다. 그냥 앉아서 잘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무임승차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그걸 누누이 학습해왔다. 나섰다가 당하는 사람들을 계속 보아왔던 거다. 그 와중에 우린 우리 모두 힘을 합치는 순간 변한다는 것은 학습하지 않은 거다...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해 갈 때, 누군가는 그냥 관심 없이 앉아 있어서다. 이러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난, 한국의 미래를 아주 부정적으로 본다. 서민들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얘기다. 그들은 더욱 더 가난에 몰릴 것이고, 부자들은 그 돈을 주체 못해서 환장할 것이다. 한국 미래는 서민들에게 쪽박일 뿐이다. 그만큼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될 것이고...

 아고라 인들에게 말을 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쓸데 없는 희망을 가지지 않길 바란다. 각자 살길을 모색하길 바란다.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살 수 있는 곳이 한국만 있지는 않다. 외국에 천지다. 각자 잘 선택하길 바란다.





 살기 힘든 한국, 쪽박의 나라로 만들어 버려라. 멕시코 처럼 매일 납치가 일어나는 나라로 만들게 놔둬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인데, 정의감에 불타 날뛰지 않길 바란다. 난, 한나라당, 새누리당,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지극히 싫어하는 인간이다. 정말 싫어한다. 적당히 했으면 하는데, 그렇지 않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서민의 피와 땀을 쪽쪽 빨아서 한 방울도 안남길 놈들이다.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 보다는 그렇지 않은 다른 나라도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대 이민 행렬이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다 떠나길 바란다. 그게 그들에게 철저히 복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그 '희망'이라는 것을 버리고 다 떠나길 바란다. 오히려 그게 한국을 더 빨리 변화시키는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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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아프다.

 1998년, 난 사랑이라는 걸 시작했다. 조그마한 일이 계기가 되어 누군가를 사랑해 버렸다.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 그 전까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했지만, 언제나 '자존심'이 사랑 앞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의 자존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자존심에 상처는 절대로 나지 않았다. 다만,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을 동시 다발로 여러번 느꼈다. 그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 혼자만 좋아했던 그녀는 역시나 나는 그저 주위 남자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은 소용없었다. 그저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아픔을 겪은 나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것이 내 맘대로 되는 문제였던가? 그렇게 잘 견뎌 왔던 나, 결국은 누군가를 또 좋아하게 됐고, 지금 나 또 다시 가슴을 움켜 잡고 제발 아프지만 말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 너무나 아프다. 너무나. 그녀는 떠나 버렸다. 너무나 아파서 내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 이런 사랑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는.........




 여자라는 동물을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 이제는 믿지 않으리라. 내 평생 혼자 외롭게 사는 한이 있어도, 차라리 외로운 것은 견딜만하다. 하지만 사랑의 실패는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가 힘들다. 사랑의 실패, 맛 본자 만이 그 아픔을 이해할 것이다. 그 무엇도 소용없게 되는 상태. 사랑은 그 기쁨만큼이나 슬픔이 있음을 모르고 시작하는 아름답고도 참혹한 선택이다. 그 누가 실패를 향해서 나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사랑을 못하는 것이다. 상품처럼 '3년' 보증 같은 보증이 된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 온 마음을 헤집는 일을 하는데 그 정도의 보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자들은 그 만큼 쉽게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아, 사랑에도 보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에도 보험이라는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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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쯤에 작성된 글

'머리 좋다'고 하면 우리는 의례적으로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떠올린다. "오 마이 갇드(프렌즈의 제니퍼 퍼전)". 그리고 그 와는 상반되게 말이 많은 사람들은 '별로 안똑똑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운동 선수들은 머리 안 좋은 사람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의 대답은 확실히 "NO"이올시다.
이 두뇌는 여러가지의 쓸모로 작용하는데, 자신이 개발하기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발달한다. 그리고 운동을 할 때 사람이 얼마나 두뇌를 많이 쓰는지 몰라서 아마 하는 소리일 것이다.

공부잘 한다고 하는 아이들은 엄밀이 말해서 학교에서 시험을 잘 친다는 예기다. 많은 양을 암기해서 문제를 잘 푼다는 예기도 된다. 우리가 이른 아이들에 대해서 칭찬해주어야 할 부분은 나름대로 시험을 잘치는 구나. 시험 문제들을 잘 푸는 구나 하는 것이다. 오 이넘 머리 똑똑한데.... 오 마이 갓드, 운동 선수들도 머리 똑똑하올시다. 





내가 예기하고 싶은 부분 중 하나가 말 많은 사람들에 대한 오해인데 말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생각이 많고 그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그럼 말이 없는 사람은? 자꾸 생각만 해서 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아무 생각이 없어서 말을 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한다는 예기는 이 사람은 그만큼 가능성이 많을 수 있다.

축구 선수를 보자, 축구선수가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머리를 쓰는지 아는지 모르겠다. 특히 축구를 잘한다고 하면 그만큼 머리를 빨리 굴린다는 예기다. 인간의 체력에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으며, 서로서로 개발을 하면 어느정도의 평균선은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실력차이를 만드는 것은 빠른 두뇌 회전이다. 그리고 어떤 특정 부위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때는 두뇌가 활성화 된다. 그것의 예로 인간의 손을 관할 하는 두뇌의 부위가 넓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해 질 것이다.

좋은 대학 들어 갔다고, 시험 잘친다고 깝짝되지 말자. 그건 똑똑하다는 말이 아니다. 시험을 잘 친다는 말이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것은 칭송할만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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